세상 떠난 가수의 신곡? AI가 부르는 노래는 ‘추모’인가 ‘도굴’인가
최근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를 스크롤하다 보면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섬네일을 마주치곤 한다. “[미공개 신곡] 故 김광석 - 서른즈음에 답가”, “프레디 머큐리가 부르는 뉴진스의 Hype Boy”. 우리는 홀린 듯 클릭하고 스피커에서는 너무나도 그리웠던 하지만 어딘가 섬뜩할 정도로 생생한 그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노래는 난생 처음 듣는 곡이지만 목소리는 분명 그다.
2025년 AI 목소리 복원 기술이 정교해지면서 고인이 된 전설적인 가수들의 목소리로 만든 ‘가짜 신곡’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기술이 주는 감동적인 선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동료 가수들과 유족 그리고 그들의 음악을 사랑했던 팬들에게는 당혹감과 함께 깊은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오늘 이 글은 이 뜨거운 AI 신곡 논란을 단순한 기술적 현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는 기술의 발전을 법과 윤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예술가의 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존중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며 자칫 ‘고인 능욕’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줄타기에 대한 이야기다.
1. 기술의 명과 암: 'AI 목소리 복원'은 어떻게 가능한가?
AI가 고인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기술은 더 이상 공상 과학이 아니다. AI 모델에게 한 가수의 모든 음반과 라이브 실황, 인터뷰 음성 데이터를 학습시킨다. 그러면 AI는 그 가수의 고유한 음색, 발음, 호흡, 미세한 떨림,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까지 데이터로 분석하여 완벽하게 모방할 수 있는 ‘성대 모델’을 만들어낸다.
이 기술의 ‘밝은 면’은 분명 존재한다. 비틀즈의 마지막 싱글 ‘Now and Then’처럼 고인이 남긴 미완성 데모곡을 유족과 남은 멤버들의 동의 하에 AI 기술로 복원하여 그의 마지막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감동적인 사례도 있다. 이는 기술이 예술가의 마지막 유언을 완성시켜준 긍정적인 경우다.
하지만 ‘어두운 면’은 훨씬 더 깊고 복잡하다. 익명의 사용자들이 상업적, 혹은 단순히 재미를 위해 고인의 목소리를 무단으로 사용하여 고인의 생전 철학이나 스타일과 전혀 다른 노래를 부르게 만드는 현상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2. 법의 공백 지대: ‘목소리’는 누구의 것인가?
이러한 ‘가짜 신곡’들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현재의 법은 이 새로운 현상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는 ‘회색 지대’에 놓여 있다.
- 음악 저작권: 현행 음악 저작권 법은 멜로디와 가사 즉 ‘악보’로 표현될 수 있는 부분은 보호하지만 목소리의 ‘음색’ 그 자체는 저작권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AI가 완전히 새로운 멜로디와 가사로 노래를 만들었다면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기 어렵다.
- 퍼블리시티권: 개인의 이름, 초상, 목소리 등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할 권리인 퍼블리시티권이 그나마 가장 유효한 법적 수단이다. 하지만 이 권리 역시 사후에는 그 효력이 약해지거나 소멸되는 경우가 많고 국가별로 법의 기준이 달라 국제적인 플랫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기술은 국경 없이 퍼져나가는데 법은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의 경계선 안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3. 추모인가, 도굴인가?: '예술적 유언'의 문제
법적인 문제를 떠나 우리는 더 근본적인 윤리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과연 고인의 목소리로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행위는 정당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가, 어떤 의도로 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앞서 언급한 비틀즈의 사례는 유족과 동료들이 고인의 마지막 뜻을 기리기 위해 진행한, 일종의 ‘디지털 초혼제(Digital Seance)’와 같다. 고인의 유산을 존중하고 그의 예술적 유언을 완성하려는 진정성이 담겨있다.
하지만 익명의 사용자가 아무런 합의 없이 단지 자신의 호기심이나 상업적 이익을 위해 고인의 목소리로 저급한 노래를 만들었다면 어떨까? 이는 고인이 생전에 결코 부르지 않았을 노래를 강제로 부르게 하여 그가 평생 쌓아온 예술적 명성과 이미지를 훼손하는 행위다. 이는 추모가 아닌 고인의 무덤을 파헤쳐 유산을 훔치는 ‘디지털 도굴(Digital Grave Robbing)’이자 심각한 고인 능욕 행위가 될 수 있다.
AI가 만들어낸 가짜 신곡은 고인이 남긴 ‘예술적 유언’을 왜곡하고 그가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마지막 메시지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결론: 기술의 발전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책임
AI 신곡 논란은 이제 막 시작된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가야 할 어려운 숙제다. AI 목소리 복원 기술 자체는 죄가 없다. 문제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의도와 윤리 의식이다.
법과 제도가 하루아침에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성숙한 시민 의식이다. 우리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 이것이 고인의 유산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단순히 그의 명성을 상업적으로 착취하는 것인지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술은 우리에게 죽음의 경계를 넘어 그리운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로 어떤 노래를 부르게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살아있는 우리들의 책임이자 고인에 대한 마지막 예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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